그때 그 일, 미안했어요②
-한비야, 1그램의 용기 중에서..
하지만 고맙다는 말보다 미안하다는 말이 훨씬 어렵다. 쑥스러워 메일이나 문자로 할 때도 많다. 그러나 두 눈을 질끈 감고 그야말로 1그램의 용기를 내어 직접 말하는 게 제일이다. 전화해서 “미안했어요.”하면 보통은 “뭐가요?” 혹은 “무슨 말씀이세요? 절대 아니에요.” 혹은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한다. 그러나 잠시 침묵이 흐를 때도 있다. 마음이 많이 상했던 거다. 그럴 때는 정말 미안하다. 이런 사람도 통화가 끝날 쯤에는 “전화 줘서 고마워요. 마음이 가벼워졌어요.”라고 한다. 그러면 내 마음도 풍선처럼 가벼워진다. 특별히 내가 잘못한 것 같진 않지만 뭔가 서먹해진 사람에게도 전화를 걸어서 “그때 그 일, 미안했어요.”하면 십중팔구 “나도 미안했어요.”라는 말이 돌아온다.
이렇게 전화를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알고도 섭섭하게 혹은 마음 아프고 속상하게 한 것들도 있지만 나는 비록 아무 뜻 없이 혹은 선의를 가지고 한 말에 상처받은 이들도 분명히 있을 거다. 그분들에게도 정말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이 자리를 빌려 꼭 말하고 싶다. 부디 용서해주길.
송년회의 마지막 순서는 촛불을 켜면서 시작된다. 12월 31일 밤 열 한 시쯤 집 안 전등을 다 끝 후 푹신한 방석과 눈물 닦을 휴지를 한 통 준비한다. 그러고는 편안한 자세로 앉아 기도를 드린다. 우선은 한 해 나를 눈동자처럼 보살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알게 모르게 지은 죄에 대한 용서의 기도를 올린다. 그 후 가족들과 친구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영육간의 건강과 마음의 평화를 위해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한다.
다음으로는 한 해 동안 내 책과 내 글을 읽은 독자들, 특강을 들은 분들과 내가 가르친 학생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다음에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과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세게 기도한다. 이어 각종 재난의 현장에서 그리고 극심한 가난과 불평등과 차별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한국과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수도자와 성직자들, 우리나라와 전 세계 지도자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한 이런 기도를 하는 중 어느덧 1월1일 새해가 밝아온다. 2년에 걸쳐 기도한 셈이다. 기도로 가는 해와 오는 해를 잇는 나만의 송년회는 지난해를 잘 정리했다는 만족감과 새해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앞으로 다 잘될 거라는 용기를 주는, 내게는 참으로 완벽한 송년회다!